
장르 연극
공연일 2003/05/07~2003/05/08
공연장안내 정동문화예술회관(정동A&C)
관람등급 7세이상
공연의 구성과 줄거리
대표적 서민문화인 만담과 품바가 5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시대순으로 엮어서 표현해 보았다. 50~60년대의 추억의 흘러간 노래를 타악과 신디사이저의 구성진 연주로 막이 오르면 이어 만담의 명콤비 김영운 (80세) 장소희 (62세)의 국보급 만담이 소개 된다. 근대 우리민족의 삶이었던?고난의 세월을 추억으로 묶은 만담은 어느새 50~60년대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이어서 6.25 후에 각설이(품바)가?신식도구(미군깡통, 미군수저)를 두드리며 등장한다. 품바배우는 각 지방마다 특성 있는 각설이타령을 관객에게 가르쳐 주면서 각설이 타령의 지방 나들이 길에 오른다. 흥겨운 한마당은 물론이고 품바의 위상은 높아만 간다. 마치 훈장님이라도 된 듯이 그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그야 말로 가관이다. 가수 김용만의 60-70년대 유행곡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하여 개발과 캠페인 등의 시대 분위기를 당시의 노래로 대신한다. 민요와 설장고 춤은 한층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다시 바톤을 받은 만담의 명콤비는 80~90년대의 신군부와 민주화의 과도기를 역설한다. 21세기의 만담과 품바의 등장은 세계화를 강조 하면서 “세계화란? 서로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다.” 라고 강조한다. 기관총 같은 빠른 템포의 만담과 함께 각설이들의 직업훈련과정인 동냥법을 관객에게 동냥체험을 갖게 하면서 막은 내린다.
만담
만담은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말로 세상과 사람을 풍자하는 이야기를 일컫는 말이며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재담이 계승 발전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재담의 시초는 1145년, 김부식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 제 32권 雜誌(잡지)에 최치원의 鄕樂雜詠(향악잡영) 다섯 수에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으며, 원효대사가 “누가 나에게 자루가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수 있는 기둥을 만들겠노라.” 라고 말했다고 전하는 삼국유사에서도 재담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재담은 무속, 판소리, 산대놀이나 탈춤, 꼭두각시 놀이와 같은 전통놀이 등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조선조 중기를 넘어서 글로 기록되기 시작되어 어우야담 패관잡기 청구야담 등에 나타나 있다. 만담의 시초는 1900년대 초에 활약 했던 박춘재다. 유명한 재담꾼이었던 그는 재담을 발전 시켜 오늘날의 만담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1대) 그 후 신불출이 개척하고, 신은봉에 이르러 대화 만담으로 정착하였으며, 신불출의 여제자인 김윤심으로 이어졌다.(2대) 한국 전쟁이후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 김영운 등이 만담의 전성기를 이루었다.(3대)
만담의 종류는 혼자서 하는 독만담, 둘이서 하는 대화만담, 노래를 부르며 하는 민요만담 또는 가요만담으로 분류 된다.
품바
품바란 각설이타령의 후렴구에 사용되는 일종의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로 전해왔으나 현재는 각설이나 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되었다. 품바란 낱말이 처음 기록된 문헌은 신재효의 한국 판소리 전집 중 '변강쇠歌'이다. 여기에서 보면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입장고'라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이조 말기까지는 이런 의미로 통했을 것이다.그후 일제, 해방, 자유당, 공화당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입방귀'라는 말이 널리 일반화되었는데 그것은 '입으로 뀌는 방귀'라는 뜻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피지배 계급(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관을 피하여 다니는 자, 지배계급에 불만을 품고 다니는 자, 소외된 자 등)에 있는 자들이 걸인 행세를 많이 하였는데 그들은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부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恨)과 울분을 표출했다 한다. 또한 품바란 가진 게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그것도 득도의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한다고 전하며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등의 쑥스러운 말 대신 썼다고 들 한다.또, 품바란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도 있다. 또 달리 '품'이란 품(일하는 데 드는 수고나 힘), 품앗이, 품삯 등에서 연유했다고도 한다. 허나, 전해 내려오면서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기에 함축된 의미가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라는 말로 변해왔으며, 이 노래(타령)만은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렸던 것이 다른 노래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각설이 타령이 언제부터 전래되었는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자 당시 지배계층은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거지로 변장하거나 혹은 정신병자나 병신으로 위장하여 걸인 행각을, 문인 계통은 광대로, 무인 계통은 백정, 줄타기 등등의 재인(材人)으로 전락하여 각설이 타령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음지에 사는 인간들이 속악한 세상에 대하여 던지는 야유, 풍자, 해학, 무심, 허무, 영탄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비애감을 맛보게 하는 독특한 민족문학적 채취를 풍긴다.각설이 타령이 가장 활발히 불리어지고 알려진 시대는 해방 직후로부터 6.25와 자유당시절로서 전국적으로 퍼져 불리워졌으나 공화당 때인 1968년, 법으로 걸인 행각을 금지시키면서부터 전국에서는 각설이타령이 한동안 사라지는 듯했다. 품바타령의 원래 명칭은 각설이타령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품바타령으로 통칭된 연유는 1983년 ㈜태멘 제작?기획으로 시작한 연극 <품바>의 공연 이후 테잎, 레코드 등을 통해서 전국에 확산되어 급격히 불리어지기 시작하면서 널리 일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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